민들레 사랑(Dandelion Love)
아침에 문을 열고 출근길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일상인 척해 보아도 마음에 지워진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어제가 춘분이었는데 봄이 왔다는 편지를 가볍게 끼워 넣을 틈도 없이 사람들 마음엔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디작은 바이러스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을 온통 빼앗아 버렸다.
집 근처에 위치한 커뮤니티 컬리지에는 작고 아담한 공간이 있다. 사방이 벤치로 둘러싸인 아늑한 이 곳에 나는 가끔 마음이 무겁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훌쩍 혼자 와서는 음악을 듣곤 했다. 오늘도 역시 무거운 마음을 털어낼 겸 밴치에 앉아서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의 애팔래치아의 봄(Appalachian’s Spring)을 틀어 놓고 혼자 ‘소박한 선물(simple gif)’의 음률을 나지막이 콧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한참 발로 박자를 맞추다 보니 지천에 노란색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작은 키의 노란 아가씨들은 헤죽헤죽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제 근심스런 표정 그만 내려놓으라고 재촉하듯, 내 발에 채면서도 연신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러고 보니 밖에 나올 때부터 얼굴이 간지러워 몇 번을 손으로 훔쳐냈던 기억이 난다. 바람에 날려 먼지만 한 몸짓으로 나에게 안부를 전해왔었다. 아마 바람 따라 날아가 어느 모퉁이에 정착하려다 나에게 먼저 봄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게다. 그리고는 이제 어엿한 숙녀의 모습으로 노란 옷 입고 봄 처녀가 되어 나타났다. 그동안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고운 시선으로 보아 주지 않았다. 잔디가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할 때 제 위치도 모르고 삐죽하니 잔디 가운데 버티고 서 있으면 사람들은 사정없이 뽑아내기 시작했다. 강한 번식력으로 잔디보다 더 빨리 지천을 온통 노랑으로 물들이기 일쑤고 뽑혀져도 또 어딘가에서 생존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문득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에 더욱 측은함이 앞선다. 태평양 건너 이역만리 바람에 밀리듯 와서는 번듯한 유럽인들과도 못 어울리고 수적으로 강한 남미인들에게는 스스로의 담을 쌓았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고, 우리는 특별하다고. 미국 본토의 흑인들이 걸핏하면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자기네 일 자리를 뺏는다고 유창한 영어로 말을 할 때면 그 기세에 눌려서 한 마디도 대꾸를 못하고 뒤돌아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역경을 뚫고 당당한 기세로 보란 듯이 우뚝 서 있는 우리는 발에 채면서도, 뿌리째 뽑히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노란 앉은뱅이 꽃이다.
흔히들 홀씨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꽃씨다. 한껏 부풀어 오르면 둥근 모양의 작은 솜사탕 같은데 결코 바람은 솜사탕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어느 길모퉁이나 아담한 정원의 한편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손에 닿는 순간 부서져 버려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마는 듯 보였던 먼지 같은 생명체는 정착하는 순간부터 곧은 자세로 깊이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래야 시샘하는 봄바람이 마구 흔들어대도 끄덕 없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조국의 현대사에서 6.25 동란 후 어언 70년의 세월 중, 어느 때인들 잠잠했던 시기가 있었으리요마는 80년대 격동기에 조국을 떠나 타국에 둥지를 틀었던 이민자들은 어찌 보면 바람에 밀리듯 밀려온 사람들이다. 황색의 얼굴로 거구의 흑인들이 밀집한 중심부에서 그들의 옷을 빨아주기도 했고 또한 그들의 먹거리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백인이 대다수인 증권가에서 작고 가녀린 몸짓으로 남보다 한 시간을 먼저 출근하고 한 시간을 늦게 퇴근하면서 억척스럽게 새로운 땅에 발을 붙여 나갔다. 다행히 깊은 뿌리 덕에 좀처럼 흔들림 없이 엘에이 폭동을 이겨냈고, 911을 우리 몸으로 안으며, 서브 프라임 사태에도 허리를 졸라 매며 이때까지 왔다.
민들레는 예로부터 약으로 쓰인 꽃이다. 오죽하면 민들레의 다른 이름이 구덕초일까 싶다. 인간에게 아홉 가지 덕을 끼친다는 의미로 지어진 구덕초는 이름값을 하듯 어느 것 하나라도 버릴 부분이 없다. 꽃은 말할 것도 없고 잎은 잎대로 뿌리는 뿌리대로 쓰임이 있고 사람에게 온몸을 다 바쳐 베풀 만큼 베풀다 가는 꽃이다. 국화과에 속한 민들레는 그래도 한 번쯤은 나도 한때는 국화였노라고 고개를 치켜들면서 으쓱거릴만 한데, 가는 순간까지 밥상 한구석의 나물로 남기 원하는 꽃이다. 이마저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네와 흡사하다. 어렵사리 시작한 이민생활에 밤낮으로 나가서 일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우리 몸의 요모조모에 쓰임을 받는 민들레처럼 지금은 사회의 한 일환이 되어 큰 몫을 감당하고 있다.
누가 “사자의 이빨(Dan-de-lion)”이라고 험악스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되 이름과는 정반대로 순하디 순한 꽃이다. 홀씨가 되어 홀로 날릴 때는 외로운 듯 보였지만 노랗고 밝은 꽃이 되어 군집을 이루면 이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앉은뱅이 꽃이라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보려면 누구든지 고개를 아니 숙일 수 없고 고개를 숙이다 보면 자세도 낮아지고 마음도 비워진다. 씩씩하고 당당하게 시멘트 틈새를 뚫고 나오는가 하면 혼자 있기 두려워하는 제비꽃 옆에서 함초롬히 동무가 되어주는 꽃이다.
끝까지 자기 소임을 다하되 아무 불평 없이 사람에게 한결같은 일편단심 민들레다. 변덕스러운 사람 손에서 때로는 뿌리째 뽑히고 때로는 귀히 여김 받아 한 잔의 민들레주(술)가 되어 누군가의 건강을 지켜주는 앉은뱅이 꽃이다. 가까이 보아도 어여쁘고 한참을 보아도 정감이 가는 겸허하고 작은 미물, 나의 민들레 사랑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뉴욕일보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