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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감동, 정책비전, 소통이 있는 선거

뉴욕일보 | 기사입력 2024/04/10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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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감동, 정책비전, 소통이 있는 선거
 
뉴욕일보   기사입력  2024/04/10 [04:14]

  © 뉴욕일보

이길주 박사<버겐커뮤니티 칼리지 역사학 교수>

 

정치는 건축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높고 화려하고 복잡한 건축물도 3개 요소를 기본으로 한다. 토대, 기둥, 벽면이다. 건물이 올라가기 전에 기초, 토대 공사를 먼저하고, 기초가 단단해지면 기둥을 세운다. 그다음 기둥과 기둥 사이에 벽 쌓기를 한다. 천정과 지붕은 하늘을 향한 벽면일 따름이다.

 

정치, 또 정치인에게 토대는 삶의 철학과 궤적을 말한다. 실존으로 증명된 인생철학이다. 기둥은 정책 마인드, 또는 정책 비전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국가 운영의 합법성을 확보하고 공공의 힘을 갖는다.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길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제 벽을 쌓거나 막아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사람이 살고 활동할 수 있다. 외장재는 말과 소통이다. 외장이 너무 화려하면 고비용이기도 하지만 보는 이를 피곤하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신인”이란 꼬리표를 자산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닳고 닳은 정치바닥이 아닌 공정과 정의의 기병대 격인 검찰로 살아온 ‘아웃사이더’. 이 이미지를 부각해 0.73% 차이로 당선됐다. 지지자들은 그의 인간적 토대 하나를 신뢰하고 표를 주었다.

 

◆“검찰독재” vs “법죄집단”

그 후 2년. 4월 11일 한국의 22대 총선은 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프레임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어떤 이에게는 외국어처럼 들릴 수 있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이제 고마 치아라 마”가 많은 이들에게 마치 어렵지만 익숙한 라틴어 경구처럼 귀에 들어온다. 그의 “3년은 너무 길다” 또한 일정 호소력과 파괴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치에는 일주일 뒤를 예측 할 수 없을 만큼 인화성(引火性)이 팽배해 있지만, 여러 여론조사는 야권의 약진을 기대하게 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번 총선 또한 정책은 간데없고 프레임만 걸린 결투장이 되었다. 야권은 일찍 “검찰 독재 타도”로 선거의 틀로 짰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회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은 “범죄자 집단 저지”로 맞선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주 대상이다.

“검찰독재”와 “법죄집단”의 샤우팅 매치, 소리 지르기 대결 구도에서 여권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 지역구 후보가 없는, 급조된 한 개 위성정당과 여권이 “범죄자”라 주장하는 이 정당 대표가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이 예상 밖의 상황은 앞의 정치 건축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야권을 상징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인간적 토대(기초공사)는 공고한 편이다. 뛰어난 학력, 전문성, 삶의 성실성이 돋보인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브랜드화 한 “공정과 상식”은 정치를 시작하기 전 이들의 삶의 궤적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 토대 위에 세워진 기둥이 약했다. 정책 비전과 입안 능력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현 정부가 한국 정치의 가장 고질적 문제인 삼권(三權)에 대한 혼돈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산전체주의’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기본 운영 틀인 삼권분립의 행정부 수장이다. 행정부가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면, 입법부는 예산 배정을 포함해 그 비전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실행 수단(동력)을 제공한다. 사법부는 사회 전반에 걸쳐 공동체의 합의를 파괴하는 행위를 징벌한다. 터가 평평해야 국가 건축이 가능한 이치다. 징벌은 무고한 이를 보호하는 국가적 책임의 이면이다.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건강한 식물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현 정부는 정책 수행의 동력을 검찰에서 찾으려 했다는 비판과 공격에 맞서는 역할을 “검사 처음 시작한 날 제가 평생 할 출세 다 했다고 생각했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맡겼다. 지독한 패러독스다. 야권은 이 상황을 민주주의의 파괴로 규정한다.

 

◆’담화’로 소통하는 정치

이제 정치의 벽면을 말할 때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로 소통한다. “검사는 기소장으로 말한다”의 연장이다. 알아들을만큼 다 말하고 증거를 적어 놓았으니 이해와 수용은 듣고 읽는 쪽의 책임이 된다.

오래전 한 반에 70명 가까운 학생이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교습 내용을 칠판에 빼곡히 적고 긴 지휘봉을 좌우로 움직이며 따라 읽으라 하셨다. 중간중간의 설명은 내게 턱없이 짧았다. 나는 어느덧 무릎 위에 다른 책을 올려 놓고 읽으며 입으로만 선생님을 따라가는 학생이 되어갔다. 선독(先讀)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유난히 따라 읽는 목소리가 잦아들고 그나마도 틀리게 읽을 때는 단체기합도 있었다. 불특정 다수가 받는 기합에서 반성이나 심기일전은 힘들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금 유권자들이 여당의 메시지를 충분히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의 외침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이유이다. 그의 말 “정치를 개같이 하는 게 문제지 정치 자체에는 죄가 없다"가 압권이다. 구체성이 떨어지는 단체기합 같아서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소통 방식은 흔히 말하는 “따박따박”이다. 당신은 나의 말 상대가 안된다는 뉘앙스를 단어, 표정, 몸짓에 담아 말한다. 정치에서는 신체언어가 중요한데 그는 자신의 말을 던지고, 몸을 뒤로 빼는 버릇을 갖고 있다. 대화할 게재가 아니란 메시지로 보인다. 내 말을 가급적 제제나 방해 없이 날카롭게 쏟아놓고, 상대의 말은 무력화 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정 다툼을 보는 듯하다.

 

◆“유권자 뜻 담긴 선거”를

조국혁신당과 조국 대표가 주목 받는 이유 또한 정치 건축론으로 풀 수 있다. 그의 삶의 토대는 탄탄하다. 학력, 전문성, 활동 경력 모두 돋보이는 인물이다. 여기에 가벼움이 느껴지기는 해도 “키 크고 잘 생겼다”는 외모 평가도 건물 기초공사의 점수를 높인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그는 제일 먼저 정책 기둥을 세웠다. 조국혁신당의 정책 비전에는 타당성, 현실성, 입법 가능성 이전에 먼저 절박성이 담겨있다. 국회에 들어가는 순간 ‘한동훈 특검법’을 상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사회권 보장’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누릴 권리”로서 “주거권, 보육권, 교육권, 건강권이 보장되는 나라”의 모습이라 했다. 조국혁신당이 말하는 “제7공화국”의 골자이다.

조국 대표에게서 소통의 능력을 본다. 강의록처럼 잘 짜인 그의 대중 연설은 글자 그대로 글이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는 순간이지만, 그의 인터뷰는 절제와 성실, 확신이 키-워드이다. 길게 말하지 않고, 질문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진지함이 느껴진다.

더불어 그는 메시지의 반전 능력이 있다. 조국 대표는 입시 비리 및 검찰 무마 등 혐의에 대한 1, 2심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실형이 확정되면 감옥에 가야 한다. 조국 대표를 떠올리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기분을 갖게 하는 사안이다.  

조국 대표는 이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메시지화(化)하고 있다. 여당에 대해 “내로남불”이라 비판도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가게 된다면 “읽었던 책 읽고 팔굽혀펴기 하고 스쿼트 하고 플랭크 하고 이러면서 건강관리 열심히 해서 나와야죠”라 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돌아오마” 한마디로 패장에서 영웅으로 탈바꿈한 인물이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1942년 3월 그는 일본이 진주한 미국의 자치령 필리핀을 탈출해야 했다. 명령을 따르는 일이었지만 필리핀 사람들을 배반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 때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인들에게 돌아오마 약속 했다. “I shall return.” 1944년 10월 맥아더는 필리핀에 다시 상륙해 “돌아왔습니다(I have returned)”라 외쳤다. 그는 태평양 전쟁의 영웅이 되었다.

총선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감동적인 삶의 스토리가 있는 후보들, 정책비전, 진솔한 소통, 더불어 한 표 한 표에 유권자의 뜻이 담긴 선거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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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10 [04:14]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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