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 한인사회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저승에서라도 일본 사죄 받으시길”
8일 중앙장의사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추모식
 
뉴욕일보 기사입력  2018/07/07 [06:51]
▲     © 뉴욕일보

하늘가족재단은 지난 1일 한국에서 별세한 일본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추모를 위한   분향소를 플러싱에 있는 중앙장의사에 마련하고 8일 오후 3시 추모식을 갖는다. 사진은 3일 오전 경남 통영시 충무실내체육관 시민분향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영결식.

 

지난 1일 한국에서 별세한 일본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향년 101세) 추모를 위한 분향소가 하늘가족재단(이사장 하미광) 주최로 플러싱에 있는 중앙장의사(대표 하봉호,162-14 Sanford

Ave. Flushing, NY 11358)에 마련됐다.

하늘가족재단과 뉴욕한인들은 8일(일)오후 3시~5시 중앙장의사 분향소에서 김복득 할머니 추모식을 갖는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하늘가족재단 관계자는 “김복득 할머니는 생전 ‘일본이 참말로 사죄만 한다쿠모 편히 눈을 감고 갈 수 있겄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겄다’고 피눈물로 외쳐왔다. 그러나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채 영면하셨다. 할머니의 외침을 기억하고 할머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 뉴욕일보

2014년 1월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김복득 할머니. 김복득 할머니는 생전 “일본이 참말로 사죄만 한다쿠모 편히 눈을 감고 갈 수 있겄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겄다”고 피눈물로 외쳐왔다.


하늘가족재단은 이 자리에서 위안부 관련 영화를 상양하고 다과를 제공 한다. ▶ 뉴욕일보 7월6일자 A3면 광고 참조 △연락처: 347-739-6502


◆ 김복득 할머니의 생애 = 김복득 할머니는 22세가 되던 해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징용 모집자의 말에 속아 고향 통영에서 중국, 필리핀 등지로 끌려갔다. 일제 강점기 타국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은 김 할머니는 해방 직후에야 7년만에 가까스로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피울음을 토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기억에도 김 할머니는 주저앉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투사'의 삶을 살았다. 199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한 김 할머니의 이런 행적은 2010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김 할머니는 2009년 11월 통영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 통영시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시켜줄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 본인이 겪은 참상을 수차례 증언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가 열린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 참석해 당시의 비극을 증언했다. 2012년에는 그간 생활비 등을 아껴 모은 2천만 원을 통영여고에 장학기금으로 내놨다. 경남도교육청은 이런 김 할머니의 뜻에 보답하듯 2013년 3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증언록을 발간했다. 이후 이 증언록은 일본어와 영어, 중국어로도 번역돼 일본과 미국, 중국에도 발송됐다. 김 할머니는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해 펼치는 창작 뮤지컬 공연 등 각종 활동에도 직접 참석해 발언하는 등 힘을 보탰다. 2013년 말에는 가칭 '경남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에 써달라며 기금 2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이즈음 자택 생활을 뒤로하고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으로 입원했다. 몸져누운 처지에도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한 김 할머니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정부가 2015년 말 일본과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등 표현까지 써가며 맺은 위안부 한일 합의에 대해 분명히 반대했다. 김 할머니는 해당 합의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2016년 정대협이 주도한 손해배상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본인에게 지급한 1억원을 두고서는 "사전에 몰랐다"며 지난해 보호자인 조카에게 되돌려주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작년 말에는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김 할머니는 반환 의사를 공개적으로 재표명했다. 그토록 원하던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김 할머니는 3일 발인과 추모제를 거쳐 영면에 들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한   1천324차 정기수요 집회에서 “김복득 할머니께서는 ‘죽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죄를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소. 그래도 남은 소원이 있다면 다음 생에 족두리 쓰고 시집가서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소’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런 소소한 행복도 누릴 수 없으셨습니다. 김 할머니가 이승에서 못다 푼 지긋지긋한 한을 저세상에서는 다 푸시고 그곳에서라도 일본한테 사죄를 받으시길 기대하겠습니다”라고 김복득 할머니를 추모했다. <송의용 기자>
 

 

광고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7/07 [06:51]  최종편집: ⓒ 뉴욕일보
 

병역특례, 축소·폐지 52% > 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덩더쿵~” 15~16일 뉴저지 추석대잔치 열린다 /뉴욕일보
베이글녀 이제니의 과감한 누드샤워 화보집 /편집부
감기약·혈압약 먹고 술 마시면 ‘독’ /뉴욕일보 김시혁
中 명주 마오타이주 가격이 집 한채 값과 맞먹어 /뉴욕일보 박전용
세계에서 이민 선호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싱가포르 /뉴욕일보 박전용
“한인 친구” 존 리우, 화려하게 정계복귀 아벨라 현의원에 53% 대 47%로 설욕 /뉴욕일보
퀸즈한인회 38회 연례 베네핏 갈라에 300여명 참석 “각계 협조로 예산 2배로 성장, 자랑스럽다” /뉴욕일보
청주시 우수 농식품, 한인 밥상에 오른다 /뉴욕일보
자랑스러운 한인,, "나는 이렇게 일한다" /뉴욕일보
뉴저지 ⇄ JFK공항 30달러 /뉴욕일보